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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t proxy와 책임 소재의 이동

· 약 8분

지난달 meat proxy라는 말이 돌았어요. AI에게 질문을 넘긴 뒤, 돌아온 답을 읽지도 않고 동료에게 다시 전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단어만 보면 잘 만든 욕처럼 보이지만, 2025년부터 생긴 비슷한 말들을 발생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다른 점이 보여요. 탓하는 대상이 한 단계씩 옮겨가고 있어요.

처음에는 산출물을 탓했습니다​

시작은 slop이었습니다. 원래 음식물 찌꺼기를 뜻하던 이 단어가 저품질 AI 생성물 전반을 가리키게 된 경위는 예전 글에서 한 번 정리했습니다. 중요한 건 이 단계에서 지목한 대상이 어디까지나 결과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의미를 업무 맥락으로 좁힌 말이 workslop입니다. BetterUp Labs와 Stanford Social Media Lab이 2025년 9월 Harvard Business Review에 발표한 연구에서 나왔습니다. 정의는 이렇습니다.

"AI generated work content that masquerades as good work, but lacks the substance to meaningfully advance a given task."

좋은 결과물인 척하지만 실제로 일을 진척시킬 알맹이는 없는 AI 산출물이라는 뜻입니다. 미국 정규직 1,150명을 조사한 결과, 40%가 최근 한 달 안에 workslop을 받아 봤다고 답했습니다. 연구진이 짚은 핵심은 부담이 이동하는 방향이었습니다. workslop은 "shifts the burden of the work downstream", 즉 해석하고 고치고 다시 만드는 부담을 받는 쪽에 떠넘깁니다. 보낸 사람의 시간은 줄지만 받은 사람의 시간은 그만큼 늘어납니다. 따라서 조직 전체로 합산하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AI를 도입한 조직의 95%가 투자 수익을 보고하지 못한다는 통계를 함께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다음 사람을 지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개발자 Niklas Gruhn(니클라스 그룬)이 2026년 8월 3일 쓴 Don't be a meat proxy가 분기점입니다. Slack, PR 리뷰, WhatsApp에서 동료들이 Claude 출력을 그대로 붙여 넣는 일을 겪은 뒤 쓴 짧은 글입니다.

핵심 문장은 이겁니다.

"I can talk to Claude myself. It's going to be faster and I get to control the context."

Claude는 나도 직접 쓸 수 있고, 그게 더 빠르며, 맥락도 내가 정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절이 가장 뼈아픕니다. 직접 물어보면 필요한 맥락을 내가 구성해 입력합니다. 하지만 남이 중계하면 그 사람이 입력한 맥락으로 범위가 제한됩니다. 중계자가 더한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선택지를 좁힙니다.

Gruhn이 예시로 든 문장은 이런 종류입니다.

NATS control-plane events: stream leader election / R3 quorum re-form during pod churn.

받은 사람이 이 한 줄을 해독하는 데 쓰는 시간은 보낸 사람이 아낀 시간보다 깁니다. 용어 밀도가 높고, 장황하며, 가끔 틀립니다. Gruhn은 코드 리뷰를 최악의 경우로 꼽았습니다. 검토하지 않은 AI 코드를 올리면 리뷰어가 사실상 구현 작업을 대신하게 됩니다.

단어 자체는 meatspace(육체 세계를 뜻하는 옛 인터넷 속어)와 proxy를 합친 것입니다. 프록시 서버가 기계 사이에서 요청을 전달하듯, meat proxy는 사람의 몸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Simon Willison이 같은 날 소개했고, Hacker News에서 1,800점을 넘겼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자리 잡은 말로 AI;DR이 있습니다. TL;DR(too long; didn't read)을 변형한 "artificial intelligence; didn't read"입니다. AI가 쓴 흔적이 보여 읽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2026년 2월 Futurism 기사를 계기로 퍼져 Wiktionary에 등재됐습니다.

workslop과 meat proxy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구분workslopmeat proxy
지목 대상산출물사람
판정 기준내용의 알맹이중계자가 읽고 검증했는가
나온 곳학술 연구(HBR)개인 블로그
어조현상 기술인신 지적

연구에서 나온 말과 화가 나서 쓴 말은 퍼지는 속도가 다릅니다. meat proxy가 더 빨리 퍼진 이유는 정확해서라기보다 각자 떠올리는 얼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팀 전체로 번졌습니다​

사람을 지목하는 단계에서 멈췄다면 단순한 유행어로 끝났을 겁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학계에서 범위를 넓힌 말이 나왔습니다.

University of Victoria의 Margaret-Anne Storey(마거릿 앤 스토리) 교수가 2026년 2월 제안한 cognitive debt입니다. 논문 "From Technical Debt to Cognitive and Intent Debt"로 정리돼 ACM Queue에 실렸습니다. 정의는 팀 단위입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아무도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어떤 변경이 무엇에 영향을 미칠지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한 달 뒤 Addy Osmani(애디 오스마니)가 comprehension debt를 썼습니다. 2026년 3월 14일 글이고, 4월에 O'Reilly Radar에 다시 실렸습니다. 정의는 더 좁습니다.

"The growing gap between how much code exists in your system and how much of it any human being genuinely understands."

시스템에 존재하는 코드량과 사람이 실제로 이해하는 코드량의 격차입니다. Osmani 본인이 Storey의 cognitive debt를 출처로 밝혔으므로 파생 개념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참고로 comprehension debt라는 표현 자체는 Jason Gorman이 2025년 9월 30일 먼저 사용했습니다. "고장 내지 않고 고치기 위해 코드를 이해하는 데 드는 추가 시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cognitive debtcomprehension debt
제안Margaret-Anne Storey (2026-02)Addy Osmani (2026-03)
단위팀, 프로젝트코드베이스
초점공유된 이해의 소실코드량과 이해량의 격차
근거ACM Queue 논문블로그, O'Reilly Radar

두 말이 기술 부채와 갈라지는 지점이 중요합니다. 기술 부채는 코드가 지저분한 상태입니다. 눈에 보이고, 린터가 찾아내고, 리팩터링으로 갚습니다. cognitive debt는 코드가 깔끔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 상태입니다. 정적 분석으로 찾을 수 없고, 장애가 나기 전까지 증상도 없습니다. AI가 아키텍처 결정을 내리지만 그 모델은 비즈니스 맥락도 시스템 역사도 모릅니다. 그 결과 결정만 코드에 남고 근거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Storey가 제안한 완화책은 단순합니다. 팀에서 최소 한 사람이 AI가 만든 변경을 완전히 이해한 뒤에 내보낼 것, 무엇이 바뀌었는지가 아니라 왜 바뀌었는지를 기록할 것, 공유된 이해를 되짚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둘 것. 대상만 다를 뿐 meat proxy에게 요구하는 내용과 같습니다.

마지막은 모델 자신입니다​

여기까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같은 어휘 묶음에는 사람의 잘못이 아닌 것도 하나 들어 있습니다.

context rot입니다. 벡터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Chroma가 2025년 발표한 연구에서 정식화했습니다. Claude, GPT, Gemini, Qwen 계열 18개 모델로 실험했고, 결론은 이렇습니다.

"model performance degrades as input length increases, often in surprising and non-uniform ways."

입력이 길어지면 출력 품질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 양상은 예측하기 어렵고 균일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만든 과제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질문과 답의 의미 유사도가 낮을수록 성능이 더 빠르게 저하됐습니다. 입력이 길어질수록 방해 정보의 영향도 커졌습니다. 논리적으로 잘 정돈한 문서 묶음보다 뒤섞은 쪽이 더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를 인용한 2차 기사 중에는 원인을 U자 곡선이나 RoPE의 long-term decay로 단정하는 글이 꽤 있습니다. 원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we do not explain the mechanisms behind this performance degradation"이라고 명시했습니다. 현상은 측정했지만 원인은 확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인용하는 쪽에서 원문보다 더 많은 것을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context rot에서 파생된 말이 context stuffing입니다. 품질 저하를 우려해 관련 있어 보이는 정보를 전부 입력하는 습관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context rot을 악화시킵니다.

네 단계를 늘어놓으면​

단계대표 용어시기탓하는 대상
1AI slop, workslop2024~2025결과물
2meat proxy, AI;DR2026 상반기중계한 개인
3cognitive debt, comprehension debt2026 상반기팀의 집단 이해
4context rot, context stuffing2025~모델의 구조적 한계

시기가 명확하게 순차적이지는 않습니다. context rot은 1단계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계열도 다릅니다. 그래도 네 묶음이 결국 같은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AI가 만든 것을 검증하는 비용은 누가 내는가.

workslop은 받는 사람이 낸다고 답합니다. meat proxy는 중계자가 내지 않고 피했다고 답합니다. cognitive debt는 아무도 내지 않은 비용을 팀 전체가 나중에 한꺼번에 낸다고 답합니다. context rot은 그 비용이 애초에 왜 생기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규칙은 하나로 모입니다​

Gruhn이 제시한 규칙은 짧습니다.

"Read it, understand it, validate it, and then write a response in your own words."

읽고, 이해하고, 검증한 뒤 자기 말로 쓰라는 겁니다. 마지막 절이 핵심 장치입니다. 자기 말로 다시 쓰는 행위 자체가 앞의 세 단계를 거쳤다는 증거가 됩니다. Storey가 팀에 요구한 내용도 같습니다. Osmani가 코드 리뷰에서 요구한 내용도 형태만 다를 뿐 같습니다.

AI 사용을 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Gruhn도 "use AI all you want"라고 먼저 적었습니다. 실제로 이 차이를 측정한 연구도 있습니다. Anthropic이 개발자 52명을 대상으로 실험했습니다. 생성된 코드를 그대로 넘긴 쪽과 개념을 먼저 질문한 쪽의 이해도 점수가 크게 갈렸습니다. 같은 도구를 썼지만 결과가 달랐습니다. 차이를 만든 것은 사용 방식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따로 정리한 글에 자세히 있습니다.

노트

자가 점검이 필요하면 Gruhn의 기준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방금 보낸 메시지에서 AI가 쓴 문장을 제외했을 때 무엇이 남는지 보면 됩니다. 남는 게 없으면 상대는 저를 거치지 않고 직접 물어보는 편이 빠릅니다.

단어가 네 개나 생겼다는 건 그만큼 자주 겪는 일이 됐다는 뜻이겠죠. 다만 이 목록을 동료를 분류하는 딱지로 쓰면 원래 문제는 그대로 남을 것 같아요. 저한테 가장 유용했던 건 meat proxy라는 말 자체가 아니었어요. 보내기 전에 한 번 멈추게 하는 그 짧은 규칙이었어요.

참고​

Slop과 fallback

· 약 5분

요즘 SNS 피드를 내리다 보면 AI가 만든 게 분명한 어색한 이미지와 영상, 이를테면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진이나 표정이 이상한 동물, 맥락 없이 감동만 강요하는 그림이 줄줄이 지나가요. 이걸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어요. 슬롭(Slop) — 202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 미국 메리엄웹스터, 호주 매쿼리 사전이 모두 올해의 단어로 뽑은 신조어입니다.

세 군데가 같은 해에 같은 단어를 골랐다는 사실은 좀 무섭습니다. 단어 하나로 한 해를 요약해 버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뜻은 음식물 찌꺼기​

영어 slop은 본래 음식물 쓰레기, 진창, 돼지에게 주는 먹이 찌꺼기를 가리킵니다. 1700년대에는 무른 진흙을 부르는 말이었고, 1800년대에 들어 음식 찌꺼기, 그리고 "값싸고 가치 없는 것" 일반으로 의미가 번졌습니다.

말 그대로 흘려보내는 더러운 액체에 가까운 어감입니다. 그 단어를 2025년 들어 AI 시대의 콘텐츠를 가리키는 비유로 다시 꺼내 든 것입니다. 비유가 너무 적나라해서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습니다.

AI 슬롭이 뭔가​

이코노미스트는 슬롭을 생성형 AI가 사용자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대량으로 찍어내는 저품질 콘텐츠로 정리했습니다. 조건은 세 가지가 함께 맞아야 합니다. 우선 사람이 만들었다면 들어갔을 시간/노력 없이 한 번에 수천 장이 쏟아집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손가락이 여섯 개거나, 사실관계가 틀렸거나, 맥락이 이상합니다. 결정적으로 정성이 없습니다. 제 글도 정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저는 적어도 글을 쓰고 한 번 읽어는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것들이 검색 결과 상단이나 SNS 피드, 자동 생성 기사 같은 곳에서 원치 않아도 눈에 밟힙니다.

세 조건이 다 맞아야 슬롭입니다. AI로 만들었다고 다 슬롭은 아닙니다. 누가 의도를 가지고 편집한 결과물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스팸의 21세기 버전​

슬롭은 자주 스팸과 비교됩니다. 둘 다 받는 사람 동의 없이 정보 채널을 점거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다만 스팸은 무차별 광고였고, 슬롭은 콘텐츠 그 자체입니다. 더 교묘합니다. 스팸은 광고라는 걸 숨기지 않지만, 슬롭은 정상 글, 사진, 영상인 척 피드에 섞여 듭니다. 영어권에서는 둘을 합쳐 슬롬(Slop + Spam) 이라는 파생어까지 만들어 씁니다.

왜 하필 2025년이었나​

이코노미스트, 메리엄웹스터, 매쿼리가 같은 해에 같은 단어를 골랐습니다. 평소에는 사전사마다 색깔이 다른데, 2025년만큼은 합의를 본 셈입니다.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은 분명합니다. AI 콘텐츠 생산자는 거의 비용 없이 찍어내지만, 이용자 쪽에는 진짜 정보를 가려내는 인지 비용 이 새로 붙습니다. 검색 한 번에 진짜 후기와 AI가 짜깁기(짜집기는 잘못된 표현)한 가짜 후기를 가려야 하고, 친구가 공유한 사진이 실사인지 합성인지 의심해야 합니다. 사회 전체로 보면 거대한 외부 비용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입니다. 슬롭이 넘쳐날수록 신문/방송 같은 검증된 전통 매체에 대한 신뢰가 오히려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렇게 짚습니다. AI 사진과 실제 작가 사진을 구분하는 어떤 실험에서 사람들은 신뢰할 만한 매체가 만든 콘텐츠라면 더 큰 비용을 낼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정보가 넘칠수록 큐레이션 자체에 값이 매겨지는 구조입니다.

같은 해 옥스포드 사전 후보에는 vibe coding (AI에게 자연어로 시켜 코드 짜기), glazing (LLM이 사용자에게 과도하게 아부하는 현상, 썩 싫지만은 않습니다.), clanker (로봇/AI를 비하해 부르는 호칭) 같은 단어가 나란히 올랐습니다. 슬롭 하나만 도드라진 게 아니라 한 해 어휘 자체를 AI가 점령했던 셈입니다.

슬롭 폴백, 모르면 그럴듯하게 메우는 회로​

엔지니어 입장에서 슬롭이 더 매서워지는 지점이 따로 있습니다. 슬롭 폴백(slop fallback) 이라는 표현입니다. LLM이 잘 모르거나 답이 막혔을 때,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신 그럴듯한 문장으로 빈칸을 채워 넘기는 동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전 등재어는 아니고 영어권 엔지니어 사이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굳어진 쓰임입니다.

흔히 말하는 환각(hallucination)과는 결이 살짝 다릅니다. 환각이 "사실관계가 틀린 출력"이라는 결과론에 가깝다면, 슬롭 폴백은 "막히면 슬롭으로 떨어지는" 시스템 동작 패턴 자체를 짚습니다. 모델이 모르겠다고 답하면 사용자 만족도가 떨어지니까, 학습/튜닝 과정에서 자신감 있는 헛소리 쪽으로 슬며시 기울게 된다는 진단입니다. Antislop 같은 연구가 LLM 출력의 반복 패턴을 억제하려 하는 것도 결국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입니다.

답이 막힌 뒤 그럴듯한 출력으로 떨어지는 슬롭 폴백 흐름

문제는 이 폴백이 사람한테도 그대로 옮겨붙는다는 데 있습니다. AI 어시스턴트로 일하다 보면, 자료를 충분히 찾기 싫을 때 "AI한테 한 번 시켜보고 그럴듯한 게 나오면 그대로 가자"는 유혹이 생깁니다. 본인이 직접 슬롭 폴백 회로의 한 부품이 되는 셈입니다. 저는 도구의 결함보다 이쪽이 더 신경 쓰여요.

도구를 쓰는 입장에서​

매일 Claude Code로 문서 초안을 잡고, 이미지 도구를 쓰고, 검색 결과를 참고하는 사람으로서 이 단어를 가볍게 넘기기 어렵고, 제가 만들고 있는 게 슬롭이 아닌지 자꾸 자문하게 돼요.

기준이 있다고 봅니다. AI를 써서 뽑은 결과물에 누가 읽을지, 어떤 가치를 줄지 한 번이라도 생각이 들어갔다면 슬롭이 아닙니다. 사람이 손을 댄 흔적, 의도와 편집이 묻은 흔적이 있으면 결 자체가 다릅니다. 반대로 광고 수익이나 SEO를 위해 양만 찍어내는 자동 생성물은 그대로 슬롭에 가깝습니다.

같은 도구를 써도 결과물의 격은 도구를 쥔 사람의 태도에서 갈립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편집 감각이 AI 시대 글쓰기에서 정작 가장 비싼 자원인지도 모릅니다.

단어가 생기면 비로소 보인다​

매년 사전이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는 그해의 정서를 한 단어로 압축해 놓은 결과입니다. 2024년이 brain rot이었다면, 2025년은 슬롭입니다.

저질 콘텐츠 자체가 새로 생긴 현상은 아닙니다. 다만 AI가 그 생산 단가를 0에 수렴시켰다는 것, 그리고 그걸 부르는 이름이 생겼다는 게 2025년의 차입니다. 이름이 붙으면 비로소 보이고, 보이면 거를 수 있습니다. 슬롭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만으로 의외로 쓸 만한 정신 도구가 하나 늘었습니다.

피드를 내리다 보면 이게 슬롭인가 싶어 멈칫하는 순간이 있고, 그 멈칫이 한 번 생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시간을 덜 빼앗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