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코딩 에이전트를 쓰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IDE를 열면 인라인 추천이 뜨고, 복잡한 작업은 Claude Code나 Cursor에게 맡기는 게 자연스럽다. 속도는 확실히 빨라졌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조용히 줄어드는 무엇이 있다는 거다.
“AI를 잘 쓰려면 AI 없이도 잘해야 한다"는 역설#
최근 본 두 편의 글이 같은 지점을 짚고 있었다. 표현은 다른데 결론은 비슷했다.
하나는 evan-moon의 AI 코딩 시대, 성장이 멈추는 개발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 핵심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AI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개발자는, AI 없이도 코드를 판단할 수 있는 개발자다.
처음 들으면 당연한 말 같다. 그런데 곱씹어보면 불편한 이야기다. AI 에이전트가 완성된 코드를 바로 뱉어주는 환경에서만 성장한 개발자일수록, 그 출력물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할 근거 지식이 약해진다. “AI를 많이 쓸수록 AI를 잘 쓰기 어려워진다"는 역설이 생긴다.
뇌는 편한 길로 흐른다#
이 역설은 뇌과학으로도 설명된다. evan-moon의 글은 세 가지 개념을 끌어온다.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 — 로버트 비요크의 연구다. 적절한 난이도의 도전이 장기 기억 형성을 촉진한다는 것. 편하게 받아들인 정보는 오래 남지 않는다.
인출 연습(retrieval practice) — 반복해서 읽는 것보다 스스로 기억을 떠올리는 쪽이 일주일 뒤 기억 보존율을 크게 끌어올린다. 수동적 읽기와 능동적 학습은 전혀 다른 행위다.
청킹(chunking) — 체스 전문가의 뇌는 초보자와 같은 조각을 보면서도 한 덩어리로 압축해 인지한다. 패턴을 직접 조합해본 경험 없이는 이런 청크가 형성되지 않는다.
AI가 완성된 코드를 즉시 뱉어주면, 이 세 가지 과정이 전부 건너뛰어진다. 난이도는 사라지고, 기억을 인출할 일도 없고, 패턴을 조합해 청크로 압축할 기회도 없다. 속도는 빨라지는데 숙련은 느려진다.
그리고 뇌에는 기본값이 하나 있다. 에너지를 아끼는 쪽으로 흐른다는 것. 편한 길이 있으면 그쪽으로 간다. 의식적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AI에 의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52명으로 진행한 무작위 대조 시험#
이론만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2026년 2월, Anthropic이 같은 주제로 직접 실험을 했다. Python 경력 1년 이상의 개발자 52명(대부분 주니어)을 무작위로 두 그룹에 배치하고, Trio 비동기 라이브러리를 활용한 과제를 주었다. 한쪽은 AI 어시스턴트를 자유롭게 썼고, 한쪽은 손으로만 작성했다.
결과는 선명했다.
- 과제 완료 속도: AI 그룹이 평균 2분 빠름 (통계적 유의성 없음)
- 과제 후 개념 퀴즈 점수: AI 그룹 50%, 수동 그룹 67%
- 가장 큰 격차가 벌어진 영역: 디버깅
속도 차이는 거의 없었는데, 이해도에서 17%p 차이가 났다. Anthropic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인지적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 AI에게 작업을 떠넘기는 만큼 뇌의 개입이 줄고, 그만큼 학습도 줄어든다. Psychology Today의 표현을 빌리면, “뇌를 온전히 써서 작업하는 사람보다 정신적 참여도가 낮아지는 현상"이다.
더 흥미로운 건 AI 그룹 안에서의 편차가 컸다는 점이다. 생성된 코드를 그대로 복사해 넘긴 참가자들은 40% 이하의 점수를 받았지만, AI에게 개념적인 질문을 먼저 던지거나 생성된 코드의 이유를 되짚어본 참가자들은 수동 코딩 그룹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즉, AI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였다.
브루클린의 3개월 코딩 수련#
같은 시기에 다른 각도에서 쓴 글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Aily Labs에서 2년간 AI 에이전트를 개발하던 Miguel Conner가 I’m Coding by Hand라는 글을 올렸다. 뉴욕 브루클린 Recurse Center의 6주 리트릿 기록이다.
AI 에이전트를 만들던 사람이 리트릿에서 하고 있는 건 의외로 복고적이다.
- CS336 과정을 따라 토크나이저와 GPT-2 모델을 직접 작성
- 1983년산 Apple IIe에서 BASIC으로 FizzBuzz
- Vim 하나로 단층 퍼셉트론 코딩
- CTF 워게임으로 Unix 터미널 손에 익히기
- 10년 경력 개발자들과 페어 프로그래밍
AI 에이전트로 5분이면 찍어낼 수 있는 것들을 일부러 손으로 만든다. 그의 요지도 결국 같은 자리에 도착한다. 에이전트에 명령만 잘 내리는 것과, 코드베이스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다른 활동이라는 거다. 손으로 만들어야만 머릿속에 남는 층이 있다.
일상과 훈련을 분리하기#
그렇다고 AI를 끄고 살 수는 없다. 마감도 있고, 동료들도 다 쓴다. 현실적인 타협점은 일상 업무와 의도적 훈련을 분리하는 데 있다.
일상 업무에서는 AI를 적극 쓴다. 대신 습관 두세 가지를 얹는다.
- PR을 올리기 전에 AI가 만든 코드의 의도를 한 번은 스스로 복기한다. 한 줄씩 읽으면서 “내가 썼다면 왜 이렇게 썼을까"를 묻는다.
- 잘 모르는 영역을 처음 만질 때는 AI에게 완성을 맡기기 전에 최소 단위를 직접 작성해본다. 10분짜리 실습이면 충분하다.
- 주기적으로 AI 없는 시간을 둔다. 하루 중 1시간이든, 주말이든, 새 언어를 익히는 동안이든.
운동과 비슷하다. 엘리베이터를 탄다고 계단을 영영 안 오르면 몸이 굳는다. 일부러 계단을 오르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불편함이 곧 조건#
편한 도구가 많아질수록, 일부러 불편함을 만드는 게 오히려 전문가의 기술이 된다. AI가 가장 강력한 순간은 한 가지 조건에서만 온다.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레버리지로 쓸 때. 그리고 그 판단력은 역설적으로 AI가 없을 때 만들어진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오늘 어디에서 어려움을 우회했고, 어디에서 일부러 계단을 올랐는가.
참고한 글 / 연구
- evan-moon, AI 코딩 시대, 성장이 멈추는 개발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 — 뇌과학적 근거로 풀어낸 성찰
- Miguel Conner, I’m Coding by Hand — Recurse Center 리트릿 기록
- Anthropic, How AI assistance impacts the formation of coding skills (2026-02) — 52명 RCT 연구 원문
- Shen & Tamkin, How AI Impacts Skill Formation — 위 연구의 논문 버전
- Psychology Today, Cognitive Offloading: Using AI Reduces New Skill Formation — 인지적 오프로딩 개념 해설
- InfoQ, Anthropic Study: AI Coding Assistance Reduces Developer Skill Mastery by 17% — 연구 요약 기사
- 개인 블로그 두 편은 GeekNews를 통해 접했다.